조선 궁궐의 잡상(雜像) 이야기: 지붕 위 어처구니의 종류와 액막이 상징성
지붕 위에서 궁궐을 지키는 소형 조각상
조선의 궁궐 건물(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등)이나
숭례문 같은 성문의 기와지붕 내림마루 끝을 유심히 바라보면,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한 작은 토우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상들을 바로 '잡상(雜像)' 또는 '상와(床瓦)'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뜻밖의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 사용하는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표현의 '어처구니'가 바로 이 잡상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잡상은 기와지붕을 완성하는 데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였습니다.
본 글에서는 잡상의 유래, 구성 종류, 그리고 지붕 위에 올려진 상징적·기능적 이유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잡상의 유래와 소설 《서유기》 캐릭터들의 배치
조선 궁궐 지붕의 잡상은 중국
당나라 및 명나라의 건축 양식에서 유래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유교적·불교적·민속적 요소가 결합된 독자적인 형태와 배치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잡상에 조각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국의 고전 소설인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신령스러운 동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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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대장님/손오공): 맨 앞에서 줄을 이끄는 형상으로, 여의봉을 들고 신통력을 발휘하는 손오공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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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 손오공 뒤에서 정갈한 자세로 승려의 모습을 하고 앉아
있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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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 및 사오정: 돼지 형상의 저팔계와 물귀신 형상의 사오정이 순서대로
배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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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행자, 두귀잡, 이귀박, 마화상 등: 서유기 속 인물 및 악귀를 퇴치하는 신령한 괴수들이 뒤를
이어 줄을 섭니다.
건물의 격식에 따라 잡상의 개수는
홀수(3개, 5개, 7개, 9개, 11개)로 다르게
설치되었으며, 조선 궁궐 중 가장 많은 잡상이 올려진 곳은 창덕궁 경훈루(11개)입니다.
화재 예방과 액막이의 상징적·기능적 역할
목조 건축물로 이루어진 궁궐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무서운 재앙은 바로 '화재(火災)'였습니다. 잡상은 궁궐에 불이 나는 것을 막고 악귀를 쫓아내기 위한
주술적 액막이 용도로 설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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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火魔) 퇴치: 잡상으로 표현된 서유기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악귀를 제압하고 요괴를 물리치는 신통력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지붕 위 높은 곳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화마나 액운을 감시하고 차단하는 수호신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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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빗물 차단: 추녀마루와 내림마루의 기와가 만나는 접합부는 빗물이 침투하기
쉬운 약점 부위였습니다. 잡상은 이 접합부를 단단히 눌러주어 기와가 바람에 날아가거나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아주는 기능적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미학적 완성과 전통의 유쾌함
잡상은 거대하고 엄숙한 궁궐
지붕의 수직·수평선에 아기자기한 율동감과 해학성을 더해주는 미학적 장치입니다.
자칫 단조롭고 무거울 수 있는
지붕 위에 유쾌한 소설 속 캐릭터들을 수호신으로 올린 선조들의 위트와 혜안은, 오늘날 우리에게 전통
건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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